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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mbrace - Netflix
    보고 뭐라도 남기는 글 2021. 12. 10. 00:40

    미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 아니라 시대마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니 그것에 목맬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머리론 알고 있지만 나 또한 살 찌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하고, 많이 먹어도 그저 날씬하고 싶고, 세월이 흐를수록 얼굴에 탄력이 없어지는 것이 서글프다. 이 다큐는 호주에서 제작됐지만, 전 세계의 어느 나라에 틀어놔도 오 맞아맞아 하며 입을 모아 자기 얘기라고 할 것이다. 호주가 한국보다야 외모적인 압박에서 좀 더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예쁨과 덜 예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호주 사람들도 (대다수는) 비만을 혐오하고, 금발, 잘록한 허리, 터질듯한 가슴과 엉덩이, 바퀴벌레 다리를 연상케하는 길고 진한 속눈썹, 컨투어링이 잘 된 구릿빛 피부, 30도 각도로 치켜올라간 날렵한 눈꼬리, 사과먹을 때 따로 포크가 필요없을 정도로 긴 손톱, 벌에 쏘인 듯한 입술 같은 것을 예쁘다고 여긴다. 우리와는 추구하는 미의 기준이 아주 쬐끔 다를 뿐, 이들도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이런 혹독한 미의 기준 앞에선 지구상 어느 누구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억만장자에게 시집간 호주 출신 미란다 커도 '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세요, 당신은 그대로 멋져요'라며 입만 오지게 털고 뒤로는 몰래 자기 몸매 포토샵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지 않았는가. 그처럼 완벽해보이는 세계적인 모델도 본인의 몸에 손봐야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말해 뭐할까.

    자신의 몸이 마음에 안 들고 역겹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여성들. 허벅지를 이만큼 칼로 잘라내버렸으면 좋겠고 튀어나온 뱃살이 흉해서 수영장도 못 간다는 사람들. 이 다큐를 보면서, '이거 너무나 내 얘긴데?'싶었다. 나도 이십대 초반엔 다이어트 한다고 집 근처 커다란 호수를 빡세게 달리다가 아스팔트에 씨게 넘어져서 골반뼈 쪽 지방이 드러날 정도로 찰과상을 입었었는데, 그럼에도 주저 앉았을 때 드는 생각이 '허벅지가 너무 두꺼워서 칼로 썰어버리고 차라리 장애인으로 살고 싶다'였다. 학교 공부, 돈 때문에 너무나 우울해서 거의 매일 울고 지냈을 땐, (난 살이 빠진지도 몰랐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갔더니 다들 턱선이 살아났다며 부러워했다. 정작 그때의 난 내가 너무 싫어서 죽여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어디 그것 뿐이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살 찌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은 초등학생 때부터 거의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에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예전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공중목욕탕에 가면 피부가 다 쭈글쭈글해진 할머니들도 사우나에 앉아서 살빼야 된다는 소릴 한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의 여성들은 관짝이 닫힐 때까지 '아! 살 빼야 되는데'할 것이다.

    현재 호주에 살기 때문에 외모 강박에서 약간은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그 이유는 1. 그 정도의 막말 (살 좀 빼라, 여자애가 허벅지가 그게 뭐냐?-실제 내 친구와 가족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말)을 내뱉을 막역한 친구와 친족이 없으며 2. 아시아인은 아무리 살 쪄봐야 골격이 서양인들과는 비교도 안되기에 그저 스키니해 보이고 3. 그들도 속으로는 갖가지 생각을 한들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것이 상당히 무례하단 것이 학습돼있기 때문인 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을 떠났으니 비만 혐오나 외모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 하면? 대답은 슬프게도 no다. 나도 아직 놓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동안 연륜이 생겨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 몸이 얼마나 고마운 몸인가 가만히 돌아보자. 이 작은 몸으로 타국을 쏘다니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뤄냈나. 비록 모양은 내 마음처럼 생겨주진 않았지만, 아직까지 사지 멀쩡하고 어디 크게 아픈 곳도 없고 머리숱도 많고 위장도 튼튼하고 체력도 꽤 좋은 편이라 큰 불편함 없이 여태 잘만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 고마운 몸 덕분에. 허벅지 좀 두껍고 셀룰라이트 있고 뱃살 좀 있다고 그게 그렇게 꼴보기 싫을 일인가? 누구나 다 셀룰라이트 있고 뱃살이 있고, 나이가 들면 살이 찌는 것인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 인간은 애석하게도 망각의 동물이라 또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금세 까먹고 뱃살이 나왔다며 우울해할 것이 뻔하기에 여기에 이렇게 남겨둔다. 내 몸은 잘하고 있고, 문제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살면서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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