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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완 씨의 인터뷰를 읽고
    낙서장 2018. 10. 2. 00:33

    김창완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께서 저희 어머니랑 점심을 드시다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아유, 애들한테 신세 안 지고, 피해 안 주고 곱게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어요”라니까 박 선생님이 “때 되면 다 신세도 지고 추한 꼴도 보이고 그렇게 떠나는 거지요”라고 하셨대요. 이 얼마나 포용력 있는 이야기입니까?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죠. 누구나 살다 보면 더러운 꼴 볼 수 있고 다 그렇게 사는 것이죠. 그런 걸 뭐 되바라지게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추한 꼴 안 보여야 된다며 바동거리는 자세가 히키코모리를 만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거죠.


    김창완 새로 산 자동차나 휴대전화, 처음에는 흠집 안 가도록 애지중지하죠. 근데 이게 딱 흠집이 나잖아요? 그럼 느낌이 달라져요. 상처난 내 휴대전화가 굉장히 애착이 가게 되죠. 흠집 하나 없는 휴대전화에 더 애착이 갈 것 같은 건 착각이에요. 모든 게 그렇죠. 너와 나의 사이도 그렇고, 상처난 내가 더 멋있고 소중한 것이에요. 내가 아무 상처 없이 순결하다, 그거는 별로예요. 기업들이 가상 애인을 출시한다고 해봐요. 처음에는 매력있는 사람만 만들다가 궁극에는 질투, 불안감, 자학 이런 몹쓸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될 거예요. 결국에는 현실에 있는 웬수 같은 애인이 최상품으로 등장하겠죠.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5522.html#csidxbec4a42f6b02b1b9ae80a88c7f788d0 


    처음 노인요양원에 실습을 나가고선,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말기까지 진행되기 전에 재빨리 손 써서 안락사 하는 게 좋겠다고 되바라진 생각을 했었다. 스스로 돌보지도 못할 아픈 몸 오래 버텨봐야 타인에게 폐나 될 것이 뻔하니까. 그런 고통스런 상황을 견디느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얼마 전 노인 요양원 나이트 시프트를 한 번 해봤는데 밤사이 정말 많은 노인분들의 패드를 갈아야 했다. 그 중 한 노인분은 정말 피골이 상접했고 눈에선 고름이, 소변에선 피가 섞여나오는 데다가, 숨 쉴 때마다 천명이 크게 들려서 왠지 오래 못 사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돌아가셨다. 나와 동료가 다른 분들 간호하러 간 사이에 가족들이 재빠르게 왔다갔고, 장의사가 시신에 천을 씌우고 요양원을 빠져 나갔다. 누구도 그의 죽음에 질문을 하지 않는, 조용하고, 예상된, 평범한 임종이었다.   

    치매있는 노인 분들 손을 잡고 텅빈 눈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할머니, 할아버지 여기 오기 전엔 뭐했어요, 어렸을 적 꿈은 뭐였나요, 집엔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나요, 고향은 어딘가요, 그곳에도 겨울엔 눈이 오나요, 여름되면 푸른 바다에 나가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물들 때까지 서핑도 하고, 아무도 초대받지 않은 들판을 마구 뛰노셨겠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넷이나 있네요, 할머닌 꽃을 제일 좋아하시는구나, 할아버진 할리 데이비슨 타셨구나...'하고 조잘조잘 말도 걸고 싶다.  

    살다보면 지금처럼 별의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래살면 살수록 확률적으로 이 별별 일은 비례하게 증가할 것이다. 난 무슨 고상병에 걸렸던 것인지 할 수만 있다면 추한꼴일랑 안 보이고 곱게 늙고싶다 생각했는데, (급사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젊음을 벗고 늙음을 맞는 때가 오고, 건강과 이별하고 불편해지는 때가 온다. 세상에 무결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들 병들었고, 때론 아프고, 건강하다가, 적당히 멋지다가, 적당히 추한꼴 보이고 간다. 혼자 무결하고자 잠시나마 맹랑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세상 어떤 것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다 인생이 내게 주는 다양한 선물이니 그저 조용히 받아들고 천천히 즐길 수 있게 되길. 연습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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