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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읽고 뭐라도 남기는 글 2021. 11. 21. 07:45

    귀여운 책이었다. 명동이나 코엑스에서 보냈던 내 회사생활을 눈앞에 끌어다 보여주는 듯 아주 현실적이었고, '여성 3인'이 '이더리움'에 '투자'한 것도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성이 젖가슴이나 퍼커블한 존재로 나오지 않는 것도 읽기 편안했다.

    요즘은 어딜가도 주식투자, 코인 얘기 뿐이다. 근래 만난 사람들 중 코인이나 주식을 하나도 안 하는 사람은 정말로 나 뿐이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하기 싫어서는 절대 아니고 (나도 흙수저인 입장에서 사업, 부동산, 주식 아니면 큰 돈을 벌기 어렵다는 얘기에 아주 동의하는 바) 정말로 그동안 그것들을 공부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난 이들처럼 코인에 전재산을 몰빵하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조금이라도 공부해서 분산 투자할 생각이다. 

    주식을 하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진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가령 코로나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 사망자가 어마어마하다는 뉴스가 들려오면,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주가가 어디가 오르고 떨어질 지만을 생각하게 된다고. 그 아름다운 제주도 푸른바다를 앞에 두고도 이더리움 차트 들여다보느라 온갖 정신이 팔렸던 다해와 은상처럼. 하지만 그 아름다운 제주도 푸른바다, 7성급 호텔, 풀파티도 이더리움 투자가 없었다면 애초에 꿈도 못 꾸었을, 아이러니가 덕지덕지한 웃지못할 현실. 평생을 10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흙냄새 풀풀나는 인간들에게 누가 비 인간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이더리움에 전재산 꼴아박았으니 당연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차트가 목숨줄 같겠지, 정말로 돈이 많은 부자들은 무식하게 전재산을 그렇게 꼴아박지도 않을 뿐더러 투자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는 걸. 

    설탕을 잔뜩 굴려서 먹는 맛있는 핫도그처럼 달콤한 (그렇지만 먹고나면 약간 찝찝한) 현실을 선물해주고 싶었다던 작가님의 생각에 공감한다. 이런 거라도 없으면, 설탕에 굴려먹는 핫도그라도 없으면 기약없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내. 그러니 달까지 가즈아!

     

    하지만 지원했던 회사 중 아무 곳에서도, 단 한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서류에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 뭐라고 말하고 자리를 비우지? 휴가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던 건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회사-여기 갈 바에야 마론에 붙어있는 게 낫나? 그래도 일단 이력서나 넣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홍보 에이전시-에서마저 서류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인턴으로 써주고 있는 이 회사, 마론제과가 알고 보면 내가 다닐 수 있는 가장 좋은 회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2페이지)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 서울에 살게 되었을 때는 세명이 한방을 쓰는 기숙사에 살았다. 전공은 물론 지나온 삶도 성격도 성향도 생활 패턴도 다른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방을 쓰는 게 너무도 어색하고 답답해서 그곳에선 그야말로 잠만 잤지만, 그 잠만 자는 시간조차 불편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73페이지)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75페이지)

     

    자신에게 원래 있는지도 몰랐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 그 흔적만이 남은 얼굴. 월급 받아 먹고사는 사람들의 얼굴.
    (124페이지)

    사실 고급에 끝이 어딨겠어. 더 좋으려면 더 좋을 수 있고, 세상에 좋은 건 한도 끝도 없잖아.
    (142페이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웨이린도 날 좋아해. 내가 너무너무 좋대. 나중에 졸업하면 한국에 와서 직장 구하고 자리 잡을 거라고, 한국어도 배우고 있어. 요즘 가나다라 하는데 얼마나 귀여운 줄 알아? 여러가지 조건, 상황, 다 안 좋은 거 아는데, 얘가 날 좋아해서 얘가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애가 날 좋아해. 언니, 세상에 이런 일, 이렇게 희박하면서 복에 겨운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나 그냥 지금 이것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단 말이야."
    (184페이지)

    이런 내 심정을 고백하면 항상 이런 목소리들이 뒤따라 들려오곤 했다. 네가 그런 걱정을 왜 해? 너 지금 우리랑 같이 이곳에 발 디디고 똑바로 잘 서있잖아. 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너 정도면 엄청 괜찮은 편이야. 어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거진 솔숲 가까이에, 저기 가장 안쪽에서 나를 향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에이, 너 정도면 안 떨어져, 안 떨어진다니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결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명백한 벼랑의 끄트머리였다. 크고 사나운 물결이 너울질 때마다, 험한 파도가 벼랑을 힘껏 때릴 때마다 그 가장자리가 조금씩 침식되었다. 내가 서 있는 땅의 경계가 자꾸만 깎이고 부서졌다. 돌가루가 되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게 내 눈에 고스란히 보였다.
    (25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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