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세상이 두동강 나더라도 나에게는 반드시 상냥할 것
    낙서장 2021. 12. 3. 02:15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고마운 체리. 오랜만에 방문한 시장에서 산처럼 쌓아두고 싸게 팔길래 2키로나 샀는데 알고봤더니 죄다 상처가 있거나 물러서 곧 썩기 직전인 것들을 싸게 파는 거였다. 결국 1/3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 이런 데서 시장을 안 다녀본 쪼렙 티가 팍팍 난다. 앞으론 과일 살 때 속지 말아야지, 그리고 싼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임을 명심해야지. 

     



    놀랍게도 몬스테라의 새 잎이 한달 사이에 이만큼이나 나왔다. 워낙에 식물 키우는데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여 얼마 못살고 죽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심지어 저 여린잎사귀는 현재 더 튼튼해져서 아주 찐한 초록색이 되었다. 하지만 실내식물은 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뭐든 장땡이라고 하니 사실 내가 키운 건 아니고 다 태양의 덕이다. 

     

    근래 쉬는 날에 그동안 못 본 사람들을 만났는데, 꽤나 불유쾌한 만남으로 끝났다. 실은 요즘 기력이 달리는지, 쉬는날엔 너무나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반복되는 요청에 억지로 나간 약속이었는데... 한국식 꼰대 근성을 가지신 분이 여기까지 와서도 학벌, 학력 등등을 따져가며 실언을 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왜 비싼 밥먹고 저런 대변을 입으로 쌀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 여기에 5년간 살면서 비한국인에게 단 한번도 받지 않았던 학벌 차별, 지역 차별을 받고나니 내가 왜 한국을 떴는지 다시금 번쩍 상기하게 됐다. 살면서 어떻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듣고싶은 말만 듣겠냐만은 앞으론 최대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거절하기 미안하단 이유로 에너지를 쥐어짜가며 약속에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내 집들이 겸하여 이젠 동네친구가 된 A와도 미뤄왔던 만남을 가졌다. 저녁을 함께 먹은 뒤, A가 나더러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지 않냐고-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어쨌든-같이 그림 그리자며 가져온 과슈를 꺼내들었다. 수채화와 아크릴 물감의 중간쯤 어디인 정말 독특하고 매력적인 재료였다. 뭘 그려야 하나 고민하다 내가 서로의 얼굴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여 30분 만에 완성했는데, 둘다 서로의 얼굴을 존나 못그려놔서 그 날을 우정 파멸의 날로 선언하고 우리의 우정은 이것으로 끝내자고 깔끔하게 합의했다. 

     

     

     

    요즘은 코로나 환자가 많이 줄었다. 그래서 전엔 옆병동까지 다 열어서 오만 코로나 환자를 다 받았었는데, 이젠 환자가 없어서 아예 일반병동으로 전환(?)이 됐다. 그 때문에 우리 병동 간호사가 남아 돌아서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는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타부서에 무작위로 보내는데 나에겐 그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였다 (알고보니 나 만큼이나 다른 시니어 간호사들도 불만이 엄청났다). 일단 나는 에이전시나 풀에서 일을 해본적이 없기에 타병동 루틴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헬퍼로 두 번 나간 병동은 뇌졸중, 급성노인간호 이런 곳인데 환자도 5명이나 봐야해서 (원래 병동에선 4명을 봄) 하루종일 똥기저귀만 갈다가 온 적도 있고, 간혹 빗치들이 내가 여기서 일해본 적 없다고 하면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까고 뭐가 어딨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틱틱대는데 그 꼴을 꽤나 자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쓰리 나이트하는 동안 패스트 트랙도 갔었는데 도인처럼 생긴 수선생님이 오셔서 이것저것 잘 도와준 덕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면서 오늘 일 하는 건 괜찮냐고 묻길래, 아직까지 투약사고 없고, 나 때문에 죽은 사람 없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더니 수선생님도 바로 그거라며 그거면 됐다고 격려해주셨다. 그래, 뭐 간호가 별 거냐. 나 때문에 환자 안 죽고, 그들이 잘 퇴원하면 된 거지. 이렇게 다른 부서도 경험해보며 자연스레 경험치가 올라간다고 좋게 생각하련다. 

     

     

    아이스크림 내 돈주고는 잘 안 사먹는데, 하겐다즈는 한 번 먹고 그야말로 반했다. 이렇게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재현할 수 있다니. 저번엔 벤앤제리도 세일하길래 사봤는데, 그건 달기만 오지게 달고 별로였다. 

     

    https://youtu.be/GQBhsMunLq0

     

     

    김태리 배우님이 9번째 질문(어떻게 늘 긍정적으로 살 수 있냐)에 대답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생각을 깊게 안 하고, 나쁜일을 잘 잊어버리고, 잠을 잘 자고, 사소한 일에도 자주 웃고 살면 자신이 '아, 나는 괜찮구나'하며 속는다고. 하지만 김태리님은 이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누구보다 깊게 생각을 해본 사람인 게 너무 티났음. 그녀의 속 깊지만 얕음과 사소한 일에도 크게 웃는 화통함을 사랑한다. 

     

     

    https://youtu.be/4atkzBv_CGw

     

     

    이석영 교수님 강의는 유머러스하고 너무 재밌다. 교수님 천문학자 때려치고 개그맨 하셔도 될 거 같음. 잔잔하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 너무 탐난다. 그리고 강의 중간에 나오는 어떤 꼬마의 '사랑이란? 갑자기 안아주고 싶은 것'이란 현답에 깊이 공감한다.  

    김상욱, 김형도, 김갑진 다정한 교수님들에게 매일 치이는 요즘.  

     

     

     

     

     

     

     

     

    그리고...

    변이 바이러스의 난데없는 출현 때문에 결국 이번 한국행을 취소하게 됐다. 쓰나를 마치고 꿀잠자던 와중에 들려온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너무나 속상한 마음에 영사관에서 온 전화가 다 끊기기도 전에 눈물이 터져나왔다. 또 기약없는 '다음에', '코로나 끝나면'이 계속될 거니까. 그렇게 다음에 다음에가 벌써 2년이 넘어 3년이 다 돼가고, 우리 강아지는 이제 나이가 너무나 먹어버렸는데. 눈도 안 보이고 잘 걷지도 못하고 언제까지고 기약없이 나를 기다려줄 수가 없는데. 정말 보고싶다 우리 강아지. 내 옆에서 웅크려 자는 너의 작은 숨소리 들으며 지새웠던 밤들이 내 초라한 인생에서 큰 위로가 됐었는데.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귀를 쫑긋하고, 현관문을 열면 하루도 거르지않고 날 반겨주던 너의 존재가 나를 하루하루 살게하는 힘이었는데. 남들이 들으면 사람이 중요하지 그깟 개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하고, 여기서 그냥 한마리 입양하라고 쉽게 말들하지만, 나에게는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없는,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르쳐준 존재이기 때문에 가족만큼이나 소중하다.

     

    어떤 말로도 변명이 안 되겠지. 다 내 선택이었고 내 잘못이니까. 한국에 두고와서 미안해 우리 ㄷㄹ. 못해준 것만 한가득이라 지금의 그리운 마음도 눈물도 전부다 나를 위한 것임을 나도 안다. 최대한 빨리 갈게. 정말 보고싶다.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생제  (0) 2022.06.30
    공부기록  (0) 2022.06.30
    오늘만 살기  (0) 2021.11.07
    인플루언서  (0) 2021.11.04
    수채화  (0) 2021.04.2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