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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플루언서
    낙서장 2021. 11. 4. 19:17

    늘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극혐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내향형 인간인 나도 때때로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내향형 인간이든 외향형 인간이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대다수의 인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살아갈 거다. 그러니 나 어렸을 적엔 어린이들 장래희망 1위가 연예인이었는데 이젠 유튜버인 거겠지. 인간은 조금이든 아주 많이든 어쩔 수 없는 관종이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 인기가 많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달콤한 일이다. 요즘은 소셜미디어가 잘 발달해 있어서 쌍팔년도처럼 굳이 티비에 나오지 않아도 인기인이 될 수 있다. 누군들 조금만 떴다하면 인기가 바로 돈이 되니 (광고),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난다. (하나라도 더 팔고자)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세상에 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니, 요즘같은 세상에 돈이 필요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나도 인플루언서를 꿈꿔본 적이 있다. 유튜브를 시작해볼까, 인스타그램 갬성샷을 열심히 찍어볼까, 머릿 속에서 시뮬레이션은 수십번 했는데 역시나 그 정도로 열정이 있지는 않았던 건지 매번 주변 사람들에게 입만 털고 몇년 째 시작도 해보질 않았다. 

    그러다 인플루언서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영향력 있는 사람? 뭐, 수천 명한테 영향을 끼치면 인플루언서 되는 건가? 몇 백명은 되나? 몇 십 명은 어떤가? 그 기준이 뭐지? 하고 생각을 더 뜯어봤는데 우리 모두는 조금이든 아주 많이든 어쩔 수 없는 인플루언서라는 결론에 달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늘 바디샵 화이트머스크 향수를 썼는데 그 이후로 나도 늘 그 향수를 쓰게 됐다'라든가, '소꿉친구가 대학을 함께 가자고 해서 별 생각없이 대학을 함께 갔다'라든가, 직장에서 마주친 누군가의 아이템을 보고 좋아보여 똑같은 것을 구입한다든가, 블로그에서 우연히 본 여행지를 본인도 따라가 본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꼭 몇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지 않더라도, 미디어가 쫓아다니는 인기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해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인플루언서가 별 거냐, 나도 오늘부터 당당한 인플루언서임.

    오늘의 내 인플루언서는 카페의 바리스타님이었다. 볕이 좋아서 동네 나온김에 산책 좀 하다가 커피 맛이 좋다는 카페에 찾아가 테이크아웃 커피를 시켰는데, 바리스타가 아주 상냥한 어투로 내게 설탕이 필요한지 묻더니, 어차피 뚜껑 닫아서 보이지도 않을 테이크아웃 커피였지만 예쁜 라떼아트도 해주어서 "Thank you so much"라고 하니 "It's my pleasure. Have a nice day."라고 내 눈을 쳐다보며 진심으로 얘기했다. 조금의 음흉함도, 추접스러움도 없는 아주 깔끔하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서비스였다. 이렇게 진심이 통하는 인사는 참 오랜만이라 카페를 나서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커피는 나처럼 커알못이 마셔도 맛있음이 느껴질 만큼 아주 맛있는 커피라서 즐거움이 배가 됐다. 누군가의 친절이, 따스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다. 정말이다. 꼭 의사만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됐다. 새로운 일터에 출근한지 고작 한 달째인데 그동안 불만은 얼마나 많았으며 속으로 못된 생각은 또 얼마나 많이 했나. 아프다는 이에게 저 바리스타처럼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나? 동료들에게 친절했나? 돌아보니 또 부끄러운 일만 가득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남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나도 어엿한 인플루언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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