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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룰루 여행 1
    다녀오고 뭐라도 남기는 글/2022 호주 2022. 11. 14. 22:32

    비행기 창문 밖으로 슬쩍 보인 NT 땅은 확실히 듣던대로 모든 것들이 벌거죽죽했다. 친구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젯스타에서 내리자마자 사막의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쌌고 이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는 질색팔색하는 나지만 '드디어 여행 시작이구나!' 웃음이 베시시 나왔다. 공항에 여행객들을 마중나와있던 가이드 로라는 우리의 이름을 체크하곤 어디서 왔냐고 반갑다며 시원한 악수를 청했다. 로라가 저쪽 트레일러에 짐을 실으면 된다고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다른 대형 버스들보다 훨씬 허름하고 아기자기한 봉고차가 서있었다. 왠지 재미난 일이 일어날 거란 직감이 왔다. 로라가 인심도 좋게 달걀 샌드위치같은 것을 만들어뒀는데 정말 맛있어서 허겁지겁 다 먹었다.  

     

     

    로라는 자기소개부터 남다른 사람이었다. 내 생애 그렇게 시원시원하고 멋진 상여자는 처음이었다. 그런 로라를 보고 누군들 한눈에 반하지 않을까! 머리 곱게 양갈래로 땋고, 꽃 달린 모자쓰고, 화장 하나도 안 해도 예쁘고 고급스럽게 생겼는데, 반전으로 손은 음청 시커멓고 또 그 손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연신 입주변을 만져댄다. 요리는 끝장나게 잘하고, 원주민에 대해 박사 수준으로 지식도 많고, 체력도 좋고, 자기 몸통보다 세 배는 길고 두꺼운 나무도 트레일러에 척척 싣고, 물도 시원시원하게 마시고, 덥다고 반팔 소매를 콱 뜯어 입고 댕기고, 캥거루 버거와 카멜 스테이크는 21인분 구워주면서 본인은 또 비건이란다. 이렇게 반전이 많은 흥미로운 사람이라니! 여기에 더해, 마지막 날 나의 마음을 다 빼앗긴 결정적 사건이 있었으니... 

     

     

    아무튼 우리는 울룰루 주변부를 1시간 정도 도는 간단한 트랙킹부터 시작했다. 이 평평한 땅 위에 홀로 우뚝 솟은 바위산을 보면서 왜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곳이 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일단은 그 크기에 자연히 압도되고, 번개가 칠 때의 울룰루는 멀리서 봐도 내 눈에 매우 스푸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꼭 생초콜릿처럼 보였던 울룰루의 단면을 보면 바닥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하는데, 어쨌든 요는 카타추타와 울루루는 한 몸이라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남성 여성으로 나눠 이 곳의 출입을 제한하여 (울룰루-여성, 카타추타-남성) 그들만의 의식을 행하는데 원주민들만의 고유문화는 오로지 원주민들 사이에서만 공유가 가능하며 다른 성별간 공유도 금기시 되어있는지라 외부인의 사진 촬영 또한 금하고 있다 한다. 그래서 카타추타 트랙킹은 아예 사진이 없고, 울룰루도 사진이 거의 없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졌다. 

     

     

    로라 말에 따르면 울루루의 한 면은 비교적 어리고, 다른 면은 늙었다고 한다. (돌이 융기하면서 중간에 한번 쓰러진 것처럼 꺾였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확실하지 않음) 늙은 면을 보면 해골같은 구멍을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사진 금지라고 해서 못 찍었던 듯. 어쨌든 울룰루에 비가 흠뻑 내리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라 운이 아주 좋은 사람들만 비오는 울룰루를 감상할 수 있다고, 로라는 울룰루에 180번 정도 왔지만 여지껏 한 번도 못 봤다고, 이번에 같이 비오기를 기도하자고 했다.  

     

     

    거짓말처럼 비구름이 우르르 몰려와 비가 내리긴 했는데, 울룰루 주변에만 오지게 내리고 정작 울룰루엔 내리지 않았음. 저기 모자쓴 사람이 우리의 멋진 가이드 로라다. 사진이 실물보다 별로로 나오긴 했지만, 진짜진짜 멋진 사람이다. 

     

    간단한 트랙킹 후, 로라가 썰어놓은 오렌지를 먹었는데 정말 시원하고 꿀맛이었다. 기본적으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지식, 문화와 전통을 다른 비원주민들과 공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로지 원주민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원주민만이 후대에 전통을 계승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주로 춤을 추거나 노래로 정확하게 그 일을 행해오고 있다고 한다. 로라 또한 원주민이란 소릴 듣고 같이 간 친구가 원주민 중에서 완전 백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많다는 얘길 했는데, 이번에 공교롭게도 석사 공부 주제가 원주민에 관한 것이라 자료를 좀 읽어본 결과, 백인처럼 보이는 원주민에게 정말 무례한 질문 중 하나가 '너는 얼마나 원주민이냐 (퍼센티지)?'라는 질문이라고 했다. 우리도 누군가 미국인이라고 했을 때 넌 얼마나 미국인이냐고 묻지 않고 아일랜드 사람에게 얼마나 아이리쉬냐고 묻지 않고 한국인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한국인이냐고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주민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처럼 보이는 데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으니 더더욱 실례되는 질문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로라는 늘 다른 가이드보다 빠르게 움직여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우리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선셋 보러도 제일 먼저 도착했음. 저녁으로 부리또를 만들어 먹었는데, 친구가 부리또 하나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많은 재료를 넣었고 그 영향을 받은 나도,

     

     

    이 모양 이 꼴로 추접스럽게 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욕심이 넘친다. 

     

     

    점점 파베 초콜릿 색으로 물드는 울룰루를 보며 21명이서 샴페인을 10병은 마신 것 같다. 

     

     

     

    샴페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크래커도 집어먹고 사진도 찍고 있다가 가까이 서있던 친구의 팔꿈치에 가슴을 살짝 가격당했다. 그런데 이 자식이 내 가슴에 닿은 자기 팔꿈치를 기분 나쁘게 털어내며 "뭐야???? 어우씨!!!!! 왜 거기 서있어!!!!! 물컹했잖아!!!!! 기분 나빠죽겠네!!!!!! 저기 멀리 떨어져있어!!!!!!!!"하는 게 아닌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사과부터 해야지 왜 니가 내 가슴 쳐놓고 나한테 뭐라그래!!!!!!!"하니

    친구가 "아 몰라!!!!!! 그냥 기분나빠!!!!!!"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진짜 어이없고 웃겨서 한참 웃었다. 

     

     

    그리고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낭을 펴고 다같이 흙바닥에 누웠는데 별안간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해서 별을 보며 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로라는 우리에게 새벽 3시 30분에 기상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고, 친구와 나는 자기 전에 룩아웃에 올라 번개치는 울룰루를 구경했다. 내가 다음날 마실 물을 얼리려고 냉동고를 열었는데 주퍼두퍼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와 친구는 낄낄거리며 몰래 하나씩 훔쳐먹었다. 친구가 농담으로 "내일 로라가 주퍼두퍼 우리한테 나눠주면서 분명히 21개 딱 맞게 준비해놨는데 왜 모자라지? 하고 있는데 우리 혓바닥이랑 입술 파래져서 걸리는 거 아니야?"하고 서로 그러면 진짜 웃기겠다고 캬캬캬 숨 넘어가게 웃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입술이 파래지는 색을 먹은 게 아니라서 주퍼두퍼 두 개 까먹은 게 우리인 게 걸리진 않았지만 정말로 다다음날 로라가 말하길 우리 거 주퍼두퍼가 좀 모자라서 다른 팀 냉동고에서 뽀려왔다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랑 친구는 키득키득대고 한참을 숨 넘어가게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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