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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race - Netflix보고 뭐라도 남기는 글 2021. 12. 10. 00:40
미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 아니라 시대마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니 그것에 목맬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머리론 알고 있지만 나 또한 살 찌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하고, 많이 먹어도 그저 날씬하고 싶고, 세월이 흐를수록 얼굴에 탄력이 없어지는 것이 서글프다. 이 다큐는 호주에서 제작됐지만, 전 세계의 어느 나라에 틀어놔도 오 맞아맞아 하며 입을 모아 자기 얘기라고 할 것이다. 호주가 한국보다야 외모적인 압박에서 좀 더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예쁨과 덜 예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호주 사람들도 (대다수는) 비만을 혐오하고, 금발, 잘록한 허리, 터질듯한 가슴과 엉덩이, 바퀴벌레 다리를 연상케하는 길고 진한 속눈썹, 컨투어링이 잘 된 구릿빛 피부, 30도 각도로 치켜올라간 날렵한 눈꼬리, 사과먹을 때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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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두동강 나더라도 나에게는 반드시 상냥할 것낙서장 2021. 12. 3. 02:15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고마운 체리. 오랜만에 방문한 시장에서 산처럼 쌓아두고 싸게 팔길래 2키로나 샀는데 알고봤더니 죄다 상처가 있거나 물러서 곧 썩기 직전인 것들을 싸게 파는 거였다. 결국 1/3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 이런 데서 시장을 안 다녀본 쪼렙 티가 팍팍 난다. 앞으론 과일 살 때 속지 말아야지, 그리고 싼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임을 명심해야지. 놀랍게도 몬스테라의 새 잎이 한달 사이에 이만큼이나 나왔다. 워낙에 식물 키우는데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여 얼마 못살고 죽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심지어 저 여린잎사귀는 현재 더 튼튼해져서 아주 찐한 초록색이 되었다. 하지만 실내식물은 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뭐든 장땡이라고 하니 사실 내가 키운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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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 장류진읽고 뭐라도 남기는 글 2021. 11. 21. 07:45
귀여운 책이었다. 명동이나 코엑스에서 보냈던 내 회사생활을 눈앞에 끌어다 보여주는 듯 아주 현실적이었고, '여성 3인'이 '이더리움'에 '투자'한 것도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성이 젖가슴이나 퍼커블한 존재로 나오지 않는 것도 읽기 편안했다. 요즘은 어딜가도 주식투자, 코인 얘기 뿐이다. 근래 만난 사람들 중 코인이나 주식을 하나도 안 하는 사람은 정말로 나 뿐이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하기 싫어서는 절대 아니고 (나도 흙수저인 입장에서 사업, 부동산, 주식 아니면 큰 돈을 벌기 어렵다는 얘기에 아주 동의하는 바) 정말로 그동안 그것들을 공부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난 이들처럼 코인에 전재산을 몰빵하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조금이라도 공부해서 분산 투자할 생각이다. 주식을 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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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살기낙서장 2021. 11. 7. 21:29
알면 알수록 불교와 물리학은 닮았다. 제법이 공하다는, 즉 모든 것은 애초에 텅 비었다는 말 너무 물리학스럽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속이 텅텅 빈 원자와 전자 모두 동의하겠는데, 자꾸만 습관 때문에 나라는 상을 고집하게된다. 내가 쟤고, 이게 나고, 네가 나고, 만물이 다 똑같은데도 실생활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맞다고 우기고 있다. 나를 고집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는 이 마저도 나를 고집하고 있는, 정말 어리석은 인간이다. 더 어렸을 땐 (지가 뭘 안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 따위 안 믿는다고 딱 잡아 말했던가.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이 없다면 돈도, 사랑도, 가치관도, 미래도, 살아갈 의미같은 것도 애초에 존재할 수 없고 인류도 이렇게 진화할 수 없었겠지. 또 사람들이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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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낙서장 2021. 11. 4. 19:17
늘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극혐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내향형 인간인 나도 때때로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내향형 인간이든 외향형 인간이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대다수의 인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살아갈 거다. 그러니 나 어렸을 적엔 어린이들 장래희망 1위가 연예인이었는데 이젠 유튜버인 거겠지. 인간은 조금이든 아주 많이든 어쩔 수 없는 관종이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 인기가 많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달콤한 일이다. 요즘은 소셜미디어가 잘 발달해 있어서 쌍팔년도처럼 굳이 티비에 나오지 않아도 인기인이 될 수 있다. 누군들 조금만 떴다하면 인기가 바로 돈이 되니 (광고),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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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낙서장 2021. 4. 22. 16:47
갑자기 찾아온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욕망을 못 이기고 아침 8시부터 문구점에 달려가서 물감과 붓을 사왔다. 요즘같이 기술 좋은 시대에 아이패드도 있겠다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사용하면 종이도 물감도 붓도 필요없지만, 중학생 때 교실에서 만졌던 그 붓의 느낌이 갑자기 너무 그리웠다. 정말 이게 얼마만인지. 팔레트에 형형색색 물감 짜는 것도, 물통에 붓을 탈탈 터는 것도, 휴지에 물을 찍어내고 농도를 맞춰가며 채색하는 것도 너무 신나고 재밌는 일이었다. 내가 왜 그림을 좋아하는 고 하니 아무것도 없던 하얀 도화지에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그려넣을 수 있는 게 매력적이라서 인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은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내가 "원하는" 그림을 보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비스무리한 어떤 것을 내 나름대로 창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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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낙서장 2021. 3. 29. 02:24
이틀 전, 화이자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내 주변 사람들만 봐도 백신 종류에 상관없이 다들 면역반응을 꽤 심하게 겪던데 나는 왜 펄펄 끓는 열도 없고 참을만 한건지,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코로나 이미 한번 앓고 지나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완전 쌩쌩한 것은 아니라 두통과 전반적인 쇠약감 때문에 파나돌을 두어차례 먹어야 하긴 했다. 하지만 약 먹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팔팔해져서 매우 열심히 일함. 어렸을 땐 티비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말라 빠져서 어디 한 번 크게 아파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내 타고난 체력과 건강한 몸에 정말 감사한다. 친구 웨딩디너 초대받아 배터지게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영화같은 하늘. 사실 이 약속 2시간 전에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여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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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치한다.. 크러쉬낙서장 2020. 6. 11. 18:07
나에게 크러쉬는 그저 인생 2회차 틱톡 장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희열옹하고 가리워진 길 부른 것 넘나리 멋져... 목소리 감미로워... 눈 맞추는 것좀 봐. 사랑하기 때문에는 또 왜 이렇게 잘 부르는데... 옷은 진짜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한 아재스타일로 입어놓고 노래는 오지게 잘해. 음색 뭔데. 박자 쬐끔씩 밀어가며 부르는 그루브 뭔데. 자기 파트 오니까 인이어 빼고 상대를 빠져들게 만드는 눈빛으로 열창하고 다시 바보얼굴하고! 귀여운 춤도 막 추고! 휴... 한국 가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임창정 콘서트 가야지, 모서리 족발 먹어야지, 식빵언니 경기 보러 다녀야지, 크러쉬 콘서트 가야지. 울 강아지들 까까 사주고 이거 다 하려면 돈 부지런히 벌어야겠다.